I. 사안의 개요
의뢰인은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는 외국 법인으로, 알파벳 소문자 6자로 구성된 문자상표를 상품류 구분 제3류의 화장품 등에 관하여 보유한 상표권자입니다. 해당 상표권은 국내 기업이 보유하던 등록상표를 매입하여 이전받은 것이고, 의뢰인은 이를 기반으로 컬러샴푸와 염모제 등을 국내 오픈마켓에서 판매해 왔습니다.
상대방인 국내 법인은 알파벳 대문자 5자를 공통의 요부로 하는 상표 3건을 제3류 화장품 및 제44류 미용 관련 서비스업에 관하여 등록하였습니다. 3건은 요부에 결합된 부기적 구성이 서로 다를 뿐, 선등록상표와의 관계에서는 알파벳의 대소문자 표기와 중간 부분 문자 1자의 유무라는 동일한 차이만을 가집니다.
의뢰인은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를 이유로 등록무효심판 3건을 청구하였습니다. 특허심판원은 3건 모두 표장이 유사하지 않다는 이유로 심판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중 1건에서는 신속심판 신청이 불승인되었고, 이후 심리종결통지가 발송된 당일 제출된 의견서가 심결에 반영되지 않은 채 통지일로부터 3일 만에 심결이 내려졌습니다. 심결문에는 해당 의견서에 관하여 상표법 제145조의2, 제149조 제3항 및 상표법 시행규칙 제70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이 사건 심결에 반영하지 않는다라고만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심결의 논리는 이후 민사 절차로 이어졌습니다. 보전처분과 본안 사건에서도 중간 음절이 전체적인 청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아래 양 표장이 다르게 인식된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심결 3건과 민사 판단 2건, 모두 다섯 번의 판단이 의뢰인에게 불리하게 누적된 상태에서 심결취소소송이 진행되었고, 저는 이 사건의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였습니다.
II. 핵심 쟁점 및 변론 전략
쟁점은 표장의 유사 여부, 그중에서도 호칭의 유사 여부였습니다. 심결은 양 표장이 각각 3음절과 4음절의 짧은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짧은 음절로 구성된 표장에 있어서는 미세한 발음상의 차이도 호칭의 유사여부를 정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고, 나아가 세 번째 음절인 '○'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생략되거나 약하게 발음될만한 특별한 사정은 없으므로, 일반 수요자에게 양 상표는 다르게 청감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단을 그대로 두고서는 나머지 쟁점을 다투는 실익이 크지 않았습니다.
선행 절차의 판단은 심결취소소송을 기속하지 않으므로, 변론은 심결이 세운 전제 자체를 분해하는 방향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첫째, 심결이 원용한 판결들의 취지를 재검토하였습니다. 해당 판결들을 직접 확인한 결과, 짧은 음절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세한 차이를 고려한 사안이 아니라 첫 음절의 초성이 인후음과 격음, 파열음과 순음으로 갈리는 등 조음 방식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던 사안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짧은 음절 표장이라는 사정이 곧바로 비유사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정리하였습니다.
둘째, 어두 중시와 전체 청감 중심의 판단 법리에 관한 대법원 및 특허법원 판결례 20여 건을 표로 정리하여, 첫 부분과 끝부분이 일치하고 중간 음절만 차이가 나는 사안에서 호칭 유사가 인정되어 온 경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반복 음절 구조를 가진 표장 사이에 중간 음절의 차이가 있음에도 유사로 인정된 판결례 4건을 별도로 발굴하여, 반복 구조가 오히려 추가 음절을 약하게 발음시키는 요인으로 평가된 사례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셋째, 실제 발화 자료에 대한 음향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선등록상표와 동일한 문자열이 일반적인 대화 속도로 발화된 공개 영상을 확보하여 해당 표장이 발화된 구간 5개를 추출하고, 음성 분석 도구 Praat과 파형 편집 도구 Wavacity를 이용하여 음절별 파형과 강도를 확인하였습니다. 첫 음절과 두 번째 음절은 진폭이 크고 파형의 밀도가 높은 반면, 세 번째 음절은 첫 음절과 동일한 모음임에도 진폭이 축소되고 선행 음절과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음절을 구간 단위로 나누어 재생하는 영상까지 함께 제출하여 파형과 음절의 대응 관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넷째, 호칭 유사도를 정량적으로 보완하였습니다. 문자열 유사성 알고리즘 중 상표 호칭 유사성 판단에 가장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고 분석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양 표장의 유사도를 산출하고, 이를 대법원이 유사로 인정한 사안들의 유사도와 대비한 표를 제출하였습니다. 산출값은 그 사안들과 동등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다섯째, 외관에 관하여는 등록 견본이 아니라 실사용 태양까지 함께 비교하였습니다. 상대방은 대문자로 등록받은 상표를 실제로는 소문자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대소문자 차이를 외관 비유사의 근거로 삼는 것이 거래통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여섯째, 거래실정 자료를 제출하였습니다. 오픈마켓 검색창에 영문과 한글 어느 쪽으로 검색하더라도 양측 제품이 같은 검색 결과 페이지에 함께 노출되는 화면, 포털 검색창에 의뢰인 상표를 입력하면 상대방 브랜드에 대한 검색 결과로 자동 변경되고 원래 검색어의 결과를 보려면 별도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화면을 각각 확보하였습니다.
일곱째, 절차 위법이 문제된 1건에서는 이를 독립한 심결취소사유로 구성하였습니다. 상표법 시행규칙 제70조 제1항은 심리의 종결을 당사자와 참가인에게 알린 후에 당사자 또는 참가인이 제출한 서류는 심결에 고려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데, 심리종결통지서에 종결 시각이 특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같은 날 제출된 서류를 알린 후 제출된 서류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 설령 적용대상이더라도 심리재개를 구하는 취지의 의견서에 대하여 아무런 석명 없이 이를 배제한 것은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III. 특허법원의 판단(2025허10611, 2026허10026, 2026허10027)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심결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먼저 등록상표를 구성하는 알파벳 부분과 한글 부분이 모두 사전적 의미가 없는 조어로서 각각 요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관념에 관하여는 선등록상표가 특정 외국어 단어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이더라도 국내에서의 해당 외국어 보급수준을 고려했을 때 일반수요자가 선등록상표를 이와 같이 관념할 것으로 보기 어렵고, 선등록상표가 거래계에서 이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여, 양 표장 모두 특별한 관념이 없어 대비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지정상품에 관하여는 제3류 상품이 선등록상표의 지정상품과 품질, 용도, 수요자 및 판매처 등에서 동일하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고, 제44류 서비스업에 대하여도 그 서비스의 제공 과정에서 화장품이 사용되거나 화장품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서비스의 제공 장소와 상품의 판매 장소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관련되는 경우가 많으며, 동일한 사업자가 위 서비스의 제공과 화장품의 판매를 함께 영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라는 거래실정을 들어 유사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자체 개발한 기능성 제품에 사용하고 있어 수요자 범위가 중복되지 않는다고 다툰 부분에 대하여는 상표의 오인·혼동의 염려는 지정상품과 관련하여 일반적·추상적으로 출처의 오인·혼동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오인·혼동의 발생 유무나 대비되는 각 표장을 사용하는 자 사이의 분쟁 유무 등은 고려할 바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여 배척하였습니다.
특허법원은 심결을 취소하고 소송비용을 상대방이 부담하도록 하였습니다. 나머지 사건들도 같은 취지로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IV. 시사점
호칭의 유사 여부는 음절 수의 형식적 비교가 아니라 개별 음절이 실제로 어떻게 조음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성이 독립된 음가를 갖지 않는 음절인지, 모음 배열이 어떤 구조인지, 연속 발음 시 구강의 개방 정도가 어떻게 변하는지와 같은 요소는 서면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할 실익이 있습니다. 실제 발화 자료에 대한 음향 분석이나 정량적 유사도 산출은 그 자체로 결론을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청감에 관한 주장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는 수단이 됩니다.
짧은 음절로 구성된 표장에 관한 선례는 그 사안에서 어떤 차이가 문제되었는지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시 문구만 인용될 경우 실제 판단 근거와 다른 방향으로 원용될 수 있습니다.
알파벳 문자상표에서 대소문자 표기의 차이는 외관 비유사의 근거로는 약하게 평가될 수 있으며, 등록 견본과 실사용 태양이 다른 경우에는 실사용 태양까지 함께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3류 화장품과 제44류 미용 관련 서비스업은 제공 장소와 사업 주체의 중복이라는 거래실정을 통해 유사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심판 단계와 민사 절차에서 불리한 판단이 반복되었더라도 그 판단이 심결취소소송을 기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행 판단이 세운 전제 자체를 분해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를 새로 구성하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